매일 아침,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억지로 눈을 뜨고 삭막한 도시의 풍경을 마주하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아침을 여는 분이 있습니다. 해발 700미터, 강원도 정선의 깊은 산골에서 동이 트기도 전인 새벽 4시 50분에 일어나 소와 양들의 아침 식사를 챙기는 20년 차 목장주.
우연히 소를 사러 정선에 들렀다가, 소와 함께 땅까지 덜컥 사버리면서 운명처럼 산골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한 전문가의 이야기. 오늘은 7만 평의 드넓은 초원에서 펼쳐지는 그의 하루를 따라가며, 자연과 교감하고 생명을 보살피는 삶이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지 함께 느껴보려 합니다.
새벽 4시 50분, 산골의 하루는 소들의 아침 식사로 시작된다
도시가 아직 깊은 잠에 빠져있을 시간, 전문가의 하루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의 첫 번째 일과는 바로 소들의 아침 식사를 챙기는 것입니다. 스위치 하나로 사료가 자동으로 급여되는 현대적인 시스템이지만, 그의 정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사료만 먹으면 소들이 되새김질을 못해요. 그래서 이걸 꼭 줘야 돼. 사람으로 말하면 **이 건초가 바로 소들의 '김치'**인 셈이지."
소들의 위장 활동을 돕기 위해 양질의 건초를 챙겨주는 모습에서, 가축을 단순한 재산이 아닌 하나의 생명으로 대하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자동화 시스템으로 사료를 채우고, 소들의 '김치'까지 챙겨주고 나서야 그의 첫 번째 임무가 끝이 납니다.
갓 태어난 아기 양, 생명의 신비가 가득한 곳
소들의 아침 식사를 마친 뒤, 그는 양들이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죠. 바로 갓 태어난 지 2시간도 채 되지 않은 아기 양이 엄마 곁에서 가냘프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어이구, 오늘 태어났구나. 내가 온다고 오늘 태어났나 보네."
전문가는 갓 태어난 아기 양을 조심스럽게 안아 올립니다. 그리곤 엄마 양에게 아기 양을 보여주며 자신의 목소리를 각인시킵니다. "엄마가 자기 새끼 목소리를 알아듣게 하려면, 내 목소리도 같이 입력을 시켜줘야 해." 수백 마리의 양들 사이에서 어미와 새끼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도록 돕는, 수십 년의 경험에서 나온 그만의 지혜였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 양의 떨림과 어미 양의 다정한 눈빛. 바쁜 일상에 잊고 있던 생명의 경이로움과 따스함이 가슴 깊이 전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리 와!" 목동의 부름에 응답하는 7만 평 초원의 양 떼
아침 식사가 끝나면, 드디어 양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입니다. 목장의 문이 열리자, 수백 마리의 양들이 일제히 7만 평의 드넓은 초원으로 달려 나갑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는 양 떼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았죠.
"저쪽 풀은 다 먹었으니, 오늘은 이쪽으로 가야지."
전문가는 양들이 이미 풀을 뜯은 구역에는 그물망을 쳐서 막고, 새로운 풀이 있는 곳으로 길을 열어줍니다. 거대한 자연 속에서 모든 것이 그의 계획과 통제 아래 질서정연하게 움직입니다. 저녁 4~5시쯤이면, 그의 부름 한 번에 수백 마리의 양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고 하니, 그와 양들의 깊은 유대감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소를 사러 왔다가 땅까지 샀지"…20년 산골 생활의 시작
어떻게 이 깊은 산골까지 오게 되셨을까요? 그의 대답은 아주 뜻밖이었습니다.
"정선에는 원래 **'칡소(호랑이 무늬를 가진 토종 한우)'**를 사러 처음 왔었어요. 근데 소 주인이 소만은 안 팔고, 이 땅까지 같이 사야 소를 판다는 거야. 그래서 소에 반하고, 경치에 반해서 그 이튿날 바로 계약하고 이곳에 눌러앉게 된 거지."
난생처음 와본 정선 땅에서 운명처럼 만난 소 한 마리가 그의 인생을 통째로 바꾼 셈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산골 생활이 벌써 20년. "이제는 살 만큼 잘 산 것 같다"며 해 뜨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서 깊은 만족감과 평화로움이 묻어났습니다.
물론 힘든 점도 많았습니다. 가축이 아플 때 말을 못 하니 어디가 아픈지 몰라 애태울 때가 가장 힘들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육체적인 고단함은 '운동'이라 생각하며, 매일 자연이 주는 경이로운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것에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데 와서 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주저 말고 와서 사세요. 힘든 만큼 보람은 분명히 있으니까."
도시의 편리함 대신 자연의 느린 호흡을 선택한 그의 삶. 아침 안개를 헤치고 소에게 밥을 주고, 갓 태어난 아기 양의 체온을 느끼며, 드넓은 초원에서 양 떼를 이끄는 그의 하루는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가장 근원적인 행복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그의 바람처럼, 이 아름다운 목장을 이어갈 또 다른 젊은이가 나타나 이 평화로운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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